작성일 : 2022. 7. 12. 화요일 20:17
카톡 답장이 왔다. 답장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 무슨 내용일까는 싶다. 답장을 본다. 그러나 무슨 말인지 이해가 안간다. 5분도 안된 내용이 기억나지 않아서, 잠시 기억을 되새겨보다 그냥 지운다. 관계를 만들고 유지하기가 너무 지친다. 나는 사람들과 부대끼는게 어렵다. 원래부터 어려운게 아니다. 나는 사람들 사이에서 내 본래 성격을 어느정도 숨겨야만 한다. 내 온전한 성격을 좋아할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늘 답답하다. 답답해서 이따금, 익명 속에서나 가족들 끼리 있을 때에만 나를 드러낸다. 그래서 나는 익명과 가족들이편하다. 나를 숨기고 꾸미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나는 오랫동안 이런 삶을 살아 왔다. 그레 살아온 나는 외롭다. 고독하다. 지치우는 관계에 집착한다. 나에게 관계는 대게 힘이 되는게 아니라, 짐이 된다. 사실 나는 이기적인 사람이다. 함께 약속을 잡아서 무언가 하려고 하면 그게 하기가 싫다. 약속을 잡은 당시에는 괜찮다. 그건 지금 당장 할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스케쥴을 확인할 때 스트레스를 받는다. 사흘 전일때, 이틀 전일때, 하루 전일때 시시각각으로 다가오는 스케쥴을 보면, 그날의 하루를 위해 마음을 준비하다보면, 다가오는 하루하루들이 피곤하다. 그래서 약속이 지키고 싶지 않다. 회피하고 싶다. 그런 주제에 무언가를 하고는 싶다. 내 멋대로 아무때나 가자고 툭 말하고 싶고, 그러다 싫으면 말자고 툭 던지고 싶다. 그니까 사람을, 친구를 그냥 아무렇게나 대하고 싶은 거다. 나는 그런 내가 싫다. 내가 바라는 나와 진짜 나의 괴리감이 크다. 그 좁혀지지 않는 간격이 버겁다. 역겹다. 내가 나를 꼭 혐오하지만은 않다. 누가 내가 살아있을 가치가 있는 사람이냐고 묻는다면, 나는 아마 그렇지 않음 쪽에 가깝다고 말할 것이다. 하지만 살아 있을 이유가 있냐고 묻는다면 나는 아마 있을 것이라고 말할 것이다. 그런 나를 설명하기 위해 나는 나를 삼등분 할 수 밖에 없었다. 욕망을 말하는 자아, 이성을 말하는 자아, 관조하는 자아. 그러고 나서도 부족해서 나는 나를 계속해서 잘라가야 했다. 나를 비판하는 자아, 나를 보듬는 자아, 나의 면면을 드러내는 자아. 그리고 어떤 웅성거림이 있다. 이 웅성거림은 나를 욕하는 세상의 목소리이다. 나는 그것을 ‘나’로 편입시키고 싶지 않다. 그래서 나는 그것을 그냥 들려오는 어떤 목소리들이라고 생각한다. 이렇게 분할된 ‘나’들은 서로를 싫어하기도 하고 좋아하기도 할 것이다. 어느거 하나만을 진짜 ‘나’라 할 수는 없으니, 나는 내가 대게 부분적으로 싫고 부분적으로 좋을 것이다. 갈등이 크다면, 많은 부분이 싫을 것이다. 하지만 모두가 싫은 일은 없을 것이다. 나는 많은 부분에서 형편없는 사람이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을 것이다.